[2월 연구소 소식] 2025년 제17회 관악블록세미나 <기억문화의 현재와 미래>
안녕하십니까.
서울대학교 독일어문화권연구소의 관악 블록 세미나가 어느덧 열일곱 번째를 맞았습니다. 이틀에 걸쳐 한 가지 주제를 깊이 공부하는 관악 블록 세미나의 전통은 올해도 계속됩니다. 제17회 관악 블록 세미나의 주제는 ‘기억문화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는 1990년대에 독일에서 생겨난 일종의 신조어로서 과거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며 오늘날 독일 사회와 학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 개념의 의미에 관해 기억문화 연구의 대가인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기억문화는 과거에 대한 접근의 주체가 다양해진 상황을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과거는 역사가, 사서, 학예사 등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기억’이라는 핵심 개념과 함께 과거에 관한 관심은 극적으로 확대되어 개인은 물론 집단, 도시, 지역, 국가도 자신만의 과거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문화의 두 번째 의미는 한 집단이 과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과 연관됩니다. 기억문화의 도움으로 집단은 정체성을 강화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확인합니다. 세 번째 의미로 아스만은 윤리적 기억문화를 추가하는데, 이는 말하자면 희생자의 관점에서 국가와 사회의 범죄와 비판적으로 대결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기억문화는 20세기 말에 가서야 비로소 널리 수용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아스만은 평가합니다.
기억문화는 역사적 사건과 과정에 대한 공적인 기억의 미학적, 정치적, 인지적 형식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를 포괄하므로 문학, 영화학, 문화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에서 논의할 수 있고 또한, 분과의 장벽을 넘어서 상호 토론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집단이나 사회, 또는 국가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는 특정 국가의 기억문화가 그 나라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기억문화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이에 이번 관악 블록 세미나에서는 기억문화에 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해오신 여러 전문가를 초청하여 흥미로운 강연과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기억문화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그 과거와 현재를 조망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지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독일 기억문화의 핵심적 주제인 홀로코스트 기억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포스트식민주의 논의, 인종주의적 혐오의 확산 등 독일 기억문화의 현재는 물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독이라는 과거도 함께 살펴보고, 나아가 독일의 좌우에 있는 이웃 나라들로 넘어가 프랑스의 노예제 기억과 오스트리아의 기억문화까지 개관합니다. 먼 유럽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쉬워 21세기 한국이 가장 강한 분야, 영상 미디어의 기억문화 사례도 같이 들여다봅니다.
무한에 가까운 과거로부터 무엇을, 어떤 이야기를 꺼내어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기억의 담지자인 개인과 집단,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현재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고 또 미래의 모습까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새 학기가 다가오는 겨울의 끝자락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 이틀 동안 같이 열심히 공부해 보자고 여러분께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독일어문화권연구소장 조성희 드림
독일어문화권연구소는 매년 ‘관악블록세미나’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학내외 학자들을 초청하여 시의성이 높은 융합 학문적 주제나 최신 문화이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발표를 듣고 토론을 진행하는 학술대회를 열어 오고 있습니다. 2024년 6월에 열린 GIG 국제학술대회로 인해 올해 2월로 연기되어 열린 이번 관악블록세미나의 주제는 ‘기억문화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독일어문화권에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 교훈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문제는 특히 나치 정권과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건 때문에 늘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독일어문화권의 기억문화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의 기억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다양한 기억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배우고, 앞으로 기억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제17회 관악블록세미나
일시: 2025년 2월 19, 20일
장소: 서울대학교 두산인문관 8동 301호
사회: 서진태(서울대)
< 세부일정 >
2025년 2월 19일(수)
13:20~13:30 개회사
조성희(독일어문화권연구소장)
13:30~14:40 홀로코스트 기억과 포스트식민주의: 글로벌 시대의 독일 기억문화
우현아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14:50~16:00 빛의 도시와 노예제의 기억: 파리와 일드프랑스 내 노예제 기억의 장소와 새로운 기억 정치
권윤경 (서울대 서양사학과)
16:20~17:30 혐오사회와 기억문화의 위기 및 전환
김혜진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2025년 2월 20일(목)
13:30~14:40 “Die Pädagogische Provinz”: 텔캄프의 『탑』에 그려진 구 동독인의 기억 속 동독
박찬일 (서울대 독어교육과)
14:50~16:00 오스트리아의 기억문화: “우리는 모두 죄 없는 가해자다”
신지영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16:20~17:30 <응답하라 1988>에 나타난 낡음에의 매혹: 미디어 고고학으로서의 서사 혹은 노스탤지어
강경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교양학부)



2025년 2월 19일(수) 강연들

우현아 선생님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독일 사회가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성향이 강했다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과거 청산’과 ‘기억 정치’를 키워드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고 강연해 주셨습니다. 이 흐름이 계속되어 홀로코스트의 유일무이성을 강조하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국가 정체성으로 규정하자, 2020년대에는 포스트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여러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우현아 선생님은 독일에서 이 두 과거에 대한 기억을 중재하고, 적절한 방향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며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권윤경 선생님은 강연에서 노예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국가의 부를 쌓고, 성장을 이룩한 프랑스가 1848년 노예제 폐지를 통해 ‘해방의 신화’를 만들었지만, 막상 국가 주도의 기념사업은 오랜 기간 매우 부족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2010년대 후 국제적으로 기억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프랑스 내 인구 구성에서 비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노예제에 관한 새로운 기억 문화가 요구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기억문화는 주로 ‘해방’, ‘저항’, ‘애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김혜진 선생님은 AfD를 비롯한 독일 내에 극단적인 정치관에 대한 지지가 상승하고 있고, 기억 문화가 이런 흐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강연하셨습니다. 또한 변화가 큰 디지털 환경도 사람들의 기억 능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김혜진 선생님께서는 호하이젤 같은 예를 들며 이런 현재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기억문화를 찾아가는 사례들과 이 사례들에 담긴 고민들을 알려주셨습니다.

2025년 2월 20일(목) 강연들

박찬일 선생님은 강연에서 전환기 문학에 나타난 탈정치 경향을 지적하셨고, 동독이라는 국가를 제외한 채로 구 동독인의 삶을 논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우베 텔캄프의 반교양소설 『탑』은 동독이라는 국가를 교육과 교양의 측면에서 되돌아본 사례입니다. 이 소설에 따르면, 동독이 개인에게 국가에 순응하도록 가르쳐왔고, 동독에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신지영 선생님은 강연을 통해 오스트리아의 나치 역사를 요약해 주셨고, 최근에는 이를 기억하기 위한 오스트리아의 공식적인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문학계에서는 예전부터 오스트리아의 나치 및 파시즘 과거와 현재를 비판하는 작가들이 오히려 자신의 국가와 역사를 더럽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지영 선생님은 아르노 가이거의 『우리는 잘 지내요』를 예로 이 과거를 다루는 최근 문학의 성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소설은 한 가족사에 빗대어 오스트리아의 과거를 돌아보는데, 독자가 소설 속 인물들이 만든 역사의 공백을 재구성할 수 있는 독특한 접근을 합니다.

강경래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사례로 우리나라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을 미디어 고고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셨습니다. 특히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기억문화에 어떤 식으로 관련되고, 시청자들이 점점 더 텔레비전 외 다른 미디어를 이용하는 포스트-TV 시대인 현재에 시청자들과 텔레비전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강연하셨습니다.
